내가 나를 벗고 내게서 조금씩 떠나간다. 나인 줄 알았던 것들은 허물이 되어서 저기에 그대로 남아 있다. 새로 생길 굳은살들의 자리를 만지작거리며 나는 내 허물과 똑같이 생긴 겉을 쓰고 열심히 이리로 달려오는, 혹은 나를 스쳐지나가는, 혹은 이미 저만치 가 있는 모두를 천천히 본다. 세계가 도는 속도는 여전히 내게 너무 빠르고. 그해의 첫 겨울바람을 맞는 일은 익숙할 정도로 유쾌하지 못하고. 나로선 나를 구성하는 그 어떤 부분도 오롯이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이 맨살이 얼 정도로 춥게 다가오는 하루하루.
뜻밖에도 고요하고 평온한 마음을 어루만지며 11월을 난다. 대차게 넘어지는 일이 그 어떤 시기보다 잦았던 2023년의 하반기를 살아가는 동안 스스로가 진심으로 미웠던 적은 없다. 많이 울었고 많이 속상해했고 종종 내 탓도 했지만 그건 다 저기 어디쯤으로 흘러가 남아 버린 시간들이 됐다. 살아 있는 순간마다 내가 누구인지, 나는 뭘 하고 싶은지, '그래도 괜찮은지'에 대해 생각한다. 생각만 하지 않고 말로도 한다. 그러면 여기저기서 기다렸다는 듯이 허락이 쏟아진다. 와르르 소리를 내면서. 나는 모난 데 없는 블록을 맞추는 기분으로 조심히 말들을 정리해 마음에 눌러쓴 뒤 다음으로 넘어간다. 무너졌던 시간들은 그렇게 도로 세워지고. 언제나 그랬듯이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선하고자 노력하면서. 동시에 이건 척일까 진심일까 의심하면서.
척일 뿐이어도 좋은 사람이 좋아. 정제된 말을 올곧은 태도로 하는 사람이 좋아. 그러면서도 어디 한 구석이 푹 익은 과일의 속살처럼 물큰한 사람이 좋아. 찌르면 들어가고 가끔 왈칵이기도 하는. 그리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오래오래 살아가고 싶다. 멋진 할머니가 되자고 그랬던 언젠가의 은빈의 말을 곱씹으며, 나도 정말 그러고 싶다고. 수많은 허물들이 저기서 나를 지켜보고 있지만. 반투명한 그림자들을 겹쳐 입고 죽어 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가벼워진 몸과 아주 느린 속도로. 최대한 많은 것을 껴입고 많은 것을 뭉쳐 벗으며. 사랑하는 사람들의 손을 빼놓지 않고 전부 전부 쥐고서.
십대 후반과 이십대 초반의 나는 나를 대체 어떻게 다루었길래.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게 주는 사랑에는 늘 투명도 오십 정도의 걱정이 있다. 종종 머쓱해진다. 이러다 네가 갑자기 콱 죽어 버릴까 봐 불안했어. 언젠가 받고 오래 울었던 편지에 적혀 있던 문장을 떠올릴 때마다 몇 년 전의 나를 되짚어 보게 된다. 왜 그랬냐고 그때의 내게 묻고 싶지는 않다. 언제고 또 올 마음인 걸 아니까. 다만 죽고 싶지 않아진 지는 꽤나 오래되었다. 살고 싶거든. 그것도 아주 잘 살고 싶고. 아픈 데 없이 건강하게. 한 백 살 정도 먹은 뒤에, 나의 존재를 자기 삶의 기둥이 아니라 거기 어디에 놓인 아름다운 책걸상 정도로 여겨 주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나도 모르게 고요히 호흡을 멈추는 일이 꿈이 됐다. 대충 칠십 년 좀 넘게 남은 거 같으니 앞으로 한 달 정도만 좀 더 놀까 싶기도 하고.
허리를 펴고, 눈을 꾹 감았다가 뜨고, 계단을 오르듯이 마음과 몸을 박자마다 달래 가면서 살아가는 일. 생각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어도 사는 게 즐겁다. 나를 이루는 것은 온통 사랑이고 나는 그걸 살수록 체감하게 된다. 내 삶을 둘러싼 크고 작은 사랑들. 멀리서 보내오는 사랑들. 지겹도록 받아도 하나도 안 지겨운 사랑들. 오래오래 닦고 빚은 뒤에 건네주는 사랑들. 슬픔과 미움의 이름으로 오는 사랑들. 초콜릿 코팅 속에 숨겨져 있던 캐러멜처럼 내가 받아삼킨 뒤 오래도록 품고 있어야 드러나는 조심스러운 사랑들.
내가 아주 못나 보이고 종종 우습고 가끔 한심해도, 그래도 내 손을 놓지는 말기를. 나 스스로와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마음 속으로 바라는 것은 그것뿐이다. 나는 입과 손끝으로 무엇을 내보내고, 뇌에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 순간마다 고민할 거니까. 할 수 있는 한 가장 좋은 행동과 생각들을 하고, 그럼에도 스스로 언제나 부족하고 모자라다는 감각을 놓지 않고 살아갈 거니까. 그거야말로 나를 지탱하는 어떤 균형이라는 사실을 배우는 중이니까. 그 모든 것이 나를 있는 힘껏 사랑하면서도 가능한 일이란 걸 스물넷에야 깨닫는다. 딱히 늦은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억울하니까 더 오래 자주 스스로를 돌아보아야지. 빠르면 빠른 대로 세상과 박자를 맞춰서. 허물들을 발자국처럼 남기면서.
내가 나를 벗고 내게서 조금씩 떠나간다. 나인 줄 알았던 것들은 허물이 되어서 저기에 그대로 남아 있다. 새로 생길 굳은살들의 자리를 만지작거리며 나는 내 허물과 똑같이 생긴 겉을 쓰고 열심히 이리로 달려오는, 혹은 나를 스쳐지나가는, 혹은 이미 저만치 가 있는 모두를 천천히 본다. 세계가 도는 속도는 여전히 내게 너무 빠르고. 그해의 첫 겨울바람을 맞는 일은 익숙할 정도로 유쾌하지 못하고. 나로선 나를 구성하는 그 어떤 부분도 오롯이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이 맨살이 얼 정도로 춥게 다가오는 하루하루.
뜻밖에도 고요하고 평온한 마음을 어루만지며 11월을 난다. 대차게 넘어지는 일이 그 어떤 시기보다 잦았던 2023년의 하반기를 살아가는 동안 스스로가 진심으로 미웠던 적은 없다. 많이 울었고 많이 속상해했고 종종 내 탓도 했지만 그건 다 저기 어디쯤으로 흘러가 남아 버린 시간들이 됐다. 살아 있는 순간마다 내가 누구인지, 나는 뭘 하고 싶은지, '그래도 괜찮은지'에 대해 생각한다. 생각만 하지 않고 말로도 한다. 그러면 여기저기서 기다렸다는 듯이 허락이 쏟아진다. 와르르 소리를 내면서. 나는 모난 데 없는 블록을 맞추는 기분으로 조심히 말들을 정리해 마음에 눌러쓴 뒤 다음으로 넘어간다. 무너졌던 시간들은 그렇게 도로 세워지고. 언제나 그랬듯이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선하고자 노력하면서. 동시에 이건 척일까 진심일까 의심하면서.
척일 뿐이어도 좋은 사람이 좋아. 정제된 말을 올곧은 태도로 하는 사람이 좋아. 그러면서도 어디 한 구석이 푹 익은 과일의 속살처럼 물큰한 사람이 좋아. 찌르면 들어가고 가끔 왈칵이기도 하는. 그리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오래오래 살아가고 싶다. 멋진 할머니가 되자고 그랬던 언젠가의 은빈의 말을 곱씹으며, 나도 정말 그러고 싶다고. 수많은 허물들이 저기서 나를 지켜보고 있지만. 반투명한 그림자들을 겹쳐 입고 죽어 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가벼워진 몸과 아주 느린 속도로. 최대한 많은 것을 껴입고 많은 것을 뭉쳐 벗으며. 사랑하는 사람들의 손을 빼놓지 않고 전부 전부 쥐고서.
십대 후반과 이십대 초반의 나는 나를 대체 어떻게 다루었길래.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게 주는 사랑에는 늘 투명도 오십 정도의 걱정이 있다. 종종 머쓱해진다. 이러다 네가 갑자기 콱 죽어 버릴까 봐 불안했어. 언젠가 받고 오래 울었던 편지에 적혀 있던 문장을 떠올릴 때마다 몇 년 전의 나를 되짚어 보게 된다. 왜 그랬냐고 그때의 내게 묻고 싶지는 않다. 언제고 또 올 마음인 걸 아니까. 다만 죽고 싶지 않아진 지는 꽤나 오래되었다. 살고 싶거든. 그것도 아주 잘 살고 싶고. 아픈 데 없이 건강하게. 한 백 살 정도 먹은 뒤에, 나의 존재를 자기 삶의 기둥이 아니라 거기 어디에 놓인 아름다운 책걸상 정도로 여겨 주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나도 모르게 고요히 호흡을 멈추는 일이 꿈이 됐다. 대충 칠십 년 좀 넘게 남은 거 같으니 앞으로 한 달 정도만 좀 더 놀까 싶기도 하고.
허리를 펴고, 눈을 꾹 감았다가 뜨고, 계단을 오르듯이 마음과 몸을 박자마다 달래 가면서 살아가는 일. 생각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어도 사는 게 즐겁다. 나를 이루는 것은 온통 사랑이고 나는 그걸 살수록 체감하게 된다. 내 삶을 둘러싼 크고 작은 사랑들. 멀리서 보내오는 사랑들. 지겹도록 받아도 하나도 안 지겨운 사랑들. 오래오래 닦고 빚은 뒤에 건네주는 사랑들. 슬픔과 미움의 이름으로 오는 사랑들. 초콜릿 코팅 속에 숨겨져 있던 캐러멜처럼 내가 받아삼킨 뒤 오래도록 품고 있어야 드러나는 조심스러운 사랑들.
내가 아주 못나 보이고 종종 우습고 가끔 한심해도, 그래도 내 손을 놓지는 말기를. 나 스스로와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마음 속으로 바라는 것은 그것뿐이다. 나는 입과 손끝으로 무엇을 내보내고, 뇌에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 순간마다 고민할 거니까. 할 수 있는 한 가장 좋은 행동과 생각들을 하고, 그럼에도 스스로 언제나 부족하고 모자라다는 감각을 놓지 않고 살아갈 거니까. 그거야말로 나를 지탱하는 어떤 균형이라는 사실을 배우는 중이니까. 그 모든 것이 나를 있는 힘껏 사랑하면서도 가능한 일이란 걸 스물넷에야 깨닫는다. 딱히 늦은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억울하니까 더 오래 자주 스스로를 돌아보아야지. 빠르면 빠른 대로 세상과 박자를 맞춰서. 허물들을 발자국처럼 남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