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게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시집을 추천했다
사실 그런 걸 너무나도 갖고 싶어 찾던 중에 추천사를 발견했을 뿐이었지만
어쨌든 나는 그를 만나기로 결정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색하게 첫인사를 했다 첫인상은
간결했다 그는 제목과 디자인이 추상적이었고 가벼운 종이를 사용하여 만들어졌다
방문과 창문은 혹시 모를 나의 도망을 대비해 일부러 모두 열어 두었다 밤바람이 불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실례할게요, 중얼거렸고
혀를 내밀어 발끝부터 공략하기 시작했다 평소의 순서와는 조금 다른 것이어서
나는 다소 허둥댔고 그는 침착하게 기다려주었다 파우더를 두드린 듯 따뜻하고 건조한 얼굴로
뒤꿈치가 축축하게 젖었을 때쯤에 몸을 일으킨다 뻐근한 허리를 두어 번 비틀어 꺾은 나는 살짝 먹통이 된 마음을 껐다 켜기 위해 방바닥에 몇 번 침을 뱉은 뒤 정수리에 입술을 내린다 그는 나를 끌어안지도 밀어내지도 않았다 고요했다 아마도 처음부터 눈을 감고 있었을까
그런 방식으로 그를 중간까지 맛보았을 때에 나는 가진 것 중 최고로 반짝거리는 책갈피를 꺼냈다 나의 스물몇 번째 탄생일을 축하하기 위하여 가장 사랑하는 친구 중 하나가 선물한 것이다
아직은 샅샅이 먹어치울 자신이 없어요
배꼽쯤에 단단하고 작은 금속을 꽂아 넣으며 나는 묻는다 시는 솔직해야 하나요 시는 왜 솔직해야 하나요 당신에게 시는 도대체 무엇이었나요. 그는 내가 한없이 절망적인 목소리로 답할 수 없는 걸 묻는다며 웃었다 답할 수 없으니까 당신은 신이 아니라는 말처럼 들린다 무섭도록 반짝거리는 자상을 어루만지며
솔직하게 쓰지 않을 수 있나요
그렇다면 솔직하지 마세요 그러나
그럴 자신 없다면 맘 편히 솔직하십시오
(당신은 참 쉽게 말하는군요 나는 간절했는데)
그 둘 말곤 별다른 방법이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안 쓰고는 살 수 없지 않나요?
매뉴얼처럼 다정하게 닿아오는 목소리
그가 처음으로 내게 손을 뻗는다 목덜미를 끌어당기더니 고개를 틀어 각도를 맞추고 자기 발가락과 정수리와 배꼽 아래를 빨던 입안을 침범한다 어떤 입맞춤은 입을 막는 것 같아서. 목구멍에서 끓는 말을 토하듯 쏟아내 따져묻고 싶어져서. 그러니까, 이거 좀 놔 봐 당신 방금 그 말 진심이냐고
하지만 당신 내가 솔직하게 쓰면 유고처럼 읽을 거잖아 솔직하지 않게 쓰면 판타지 소설처럼 읽을 거잖아 시가 뭔데 나를 시인으로 만들지 나는 소리 지르고 싶었다, 옮아 오는 방식이 싫어 그러니 이건
질병이구나 질병으로 인한 배설이구나 차마 입에 담기도 싫었던 말들을 씹어 삼켜야만 시인이 될 수 있나요 시가 무언지 물어보고 다닌 세월만 십 년이 넘습니다 어쩐지 자신있어 보이는 사람에게는 물어보기가 두렵습니다 내가 경멸하게 될지도 몰라
혀가 목구멍을 틀어막는다 나는 밀쳐내려고 손을 들었다가
문득 올라오는 울음 때문에 그만두었다 과연 그것은 탁월하고 정확한 추천사였구나 그는 여전히도 보송하고 나는 온통 축축해져서 이제 그만 도망치고 싶어진다
키스가 끝나면 다시는 슬픔을 탐내지 않을 것이다
24. 08. 03
누군가 내게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시집을 추천했다
사실 그런 걸 너무나도 갖고 싶어 찾던 중에 추천사를 발견했을 뿐이었지만
어쨌든 나는 그를 만나기로 결정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색하게 첫인사를 했다 첫인상은
간결했다 그는 제목과 디자인이 추상적이었고 가벼운 종이를 사용하여 만들어졌다
방문과 창문은 혹시 모를 나의 도망을 대비해 일부러 모두 열어 두었다 밤바람이 불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실례할게요, 중얼거렸고
혀를 내밀어 발끝부터 공략하기 시작했다 평소의 순서와는 조금 다른 것이어서
나는 다소 허둥댔고 그는 침착하게 기다려주었다 파우더를 두드린 듯 따뜻하고 건조한 얼굴로
뒤꿈치가 축축하게 젖었을 때쯤에 몸을 일으킨다 뻐근한 허리를 두어 번 비틀어 꺾은 나는 살짝 먹통이 된 마음을 껐다 켜기 위해 방바닥에 몇 번 침을 뱉은 뒤 정수리에 입술을 내린다 그는 나를 끌어안지도 밀어내지도 않았다 고요했다 아마도 처음부터 눈을 감고 있었을까
그런 방식으로 그를 중간까지 맛보았을 때에 나는 가진 것 중 최고로 반짝거리는 책갈피를 꺼냈다 나의 스물몇 번째 탄생일을 축하하기 위하여 가장 사랑하는 친구 중 하나가 선물한 것이다
아직은 샅샅이 먹어치울 자신이 없어요
배꼽쯤에 단단하고 작은 금속을 꽂아 넣으며 나는 묻는다 시는 솔직해야 하나요 시는 왜 솔직해야 하나요 당신에게 시는 도대체 무엇이었나요. 그는 내가 한없이 절망적인 목소리로 답할 수 없는 걸 묻는다며 웃었다 답할 수 없으니까 당신은 신이 아니라는 말처럼 들린다 무섭도록 반짝거리는 자상을 어루만지며
솔직하게 쓰지 않을 수 있나요
그렇다면 솔직하지 마세요 그러나
그럴 자신 없다면 맘 편히 솔직하십시오
(당신은 참 쉽게 말하는군요 나는 간절했는데)
그 둘 말곤 별다른 방법이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안 쓰고는 살 수 없지 않나요?
매뉴얼처럼 다정하게 닿아오는 목소리
그가 처음으로 내게 손을 뻗는다 목덜미를 끌어당기더니 고개를 틀어 각도를 맞추고 자기 발가락과 정수리와 배꼽 아래를 빨던 입안을 침범한다 어떤 입맞춤은 입을 막는 것 같아서. 목구멍에서 끓는 말을 토하듯 쏟아내 따져묻고 싶어져서. 그러니까, 이거 좀 놔 봐 당신 방금 그 말 진심이냐고
하지만 당신 내가 솔직하게 쓰면 유고처럼 읽을 거잖아 솔직하지 않게 쓰면 판타지 소설처럼 읽을 거잖아 시가 뭔데 나를 시인으로 만들지 나는 소리 지르고 싶었다, 옮아 오는 방식이 싫어 그러니 이건
질병이구나 질병으로 인한 배설이구나 차마 입에 담기도 싫었던 말들을 씹어 삼켜야만 시인이 될 수 있나요 시가 무언지 물어보고 다닌 세월만 십 년이 넘습니다 어쩐지 자신있어 보이는 사람에게는 물어보기가 두렵습니다 내가 경멸하게 될지도 몰라
혀가 목구멍을 틀어막는다 나는 밀쳐내려고 손을 들었다가
문득 올라오는 울음 때문에 그만두었다 과연 그것은 탁월하고 정확한 추천사였구나 그는 여전히도 보송하고 나는 온통 축축해져서 이제 그만 도망치고 싶어진다
키스가 끝나면 다시는 슬픔을 탐내지 않을 것이다
24. 08.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