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쓰려고 하는가.
이미 작가인 사람들은 이 물음에 대수롭잖게 여길 수도 있다. 당신도 머지않아 작가가 될 것이고, 그때는 역시 이 물음을 우습게 여길 만큼 여유를 보일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당신은 아직 작가가 아닌 것이다. 그러니까 물어야 한다. 나는 왜 소설을 쓰려고 하는가.
- 전상국, 《소설 창작 강의》, 문학사상, 2015, p.25
수강생분들께는 ‘소설’이라는 장르가, 그리고 그것을 읽는 행위가 숨 쉬는 것처럼 익숙할 겁니다. 그래서 소설이 지닌 문화적 힘도 잘 아는 데다가, 어떤 소설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는 소식도 들으니(아몬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달러구트의 꿈 백화점, 불편한 편의점...) 마치 소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첫 졸작인 《드림캐처》 출판을 위해 출판사와 면담을 할 때의 일입니다.
1쇄 작품(1쇄만 찍고 사라지는 작품)이 허다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라, 어느 정도 팔아야 ‘성공했다’는 소리를 듣는지를 물었습니다.
5000부.
출판사에서 언급한 숫자는 고작 그것이었습니다.
편집자분의 말씀이, 우리나라에서 책을 읽는 인구가 손바닥이고(성인 10명 중 6명은 1년에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소설을 읽는 사람은 ‘한 줌’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래도 자기계발서나 에세이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지만, 소설은 이른바 ‘매니아’만이 관심을 갖는데, 구매까지 이어질 확률은 더욱 적다는 겁니다.
이렇게 업계가 척박한데도 여러분들은 ‘굳이’ 소설을 쓰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물어야 합니다. 왜 쓰려고 하는가.
쓰는 게 재미있어서? 쓰면서 상처를 치유할 수 있어서? 돈을 벌려고?
어떤 이유든, 내 글을 봐줄 독자가 있었으면 좋겠고, 그들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건 확실할 겁니다.
다행히 시대의 변화로 신춘문예나 출판사 투고와 같은 방법 이외에도 다양해진 공모전, 자유 업로드가 가능한 사이트를 통해 내 작품을 뽐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에 비례해 소설을 써 보겠다는 이들도 늘어나 내 작품이 묻힐 확률도 높아졌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척박한 환경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만 번을 흔들려도 소설의 결말을 지을 수 있는 이유를 마련해야 합니다.
왜 쓰려고 하는가? 이 질문이 여러분들의 소설 창작의 방향을 제시하고, 더 나아가 작가의 정체성이 될 겁니다.
위에 인용한 챕터에서 전상국 소설가님은 ‘왜 쓰려고 하는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쓰고 싶어서 쓴다
당신은 쓰지 않고 사는 일이 쓰는 일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어렴풋이 터득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쓰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
당신은 이미 소설 독자로서 소설을 좋아하는 단계를 넘어섰다.
그것은 열등감으로부터 시작된다
소설 쓰는 일이 자기를 지켜내는 일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됐기 때문에 이 길로 들어섰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열등 콤플렉스가 당신의 상상력을 부추기는 힘이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쓰는 일은 자기 구제의 길이다
문학은 자기 구제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소설을 쓰는 사람은 그 쓰는 행위가 그 사람의 삶을 지배할 수 있을 때 그 문학은 참된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문학적 재능이 있어야 한다 & 길 바로잡아 치열하게 달려가기
뭔가 풀고 싶은 강력한 욕구, 쓰는 일로 그것을 풀어낼 때 신명을 낼 수도 있다면 당신에겐 문학적 재능이 넘쳐흐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말에 대한 남다른 애착, 소설을 읽다가 문득 어느 낱말에 혹은 좋은 문장에 매료되어 긴장하는 당신의 소설문장에 대한 관심이 곧 문학적 재능이기도 하다.
윗글에 따르면, 수강생분들은 이미 문학적 재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 재능을 잘 다듬고 꽃 피우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저 역시 많은 준비를 하겠습니다.
강의에서 만나요.
수강생분들께는 ‘소설’이라는 장르가, 그리고 그것을 읽는 행위가 숨 쉬는 것처럼 익숙할 겁니다. 그래서 소설이 지닌 문화적 힘도 잘 아는 데다가, 어떤 소설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는 소식도 들으니(아몬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달러구트의 꿈 백화점, 불편한 편의점...) 마치 소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첫 졸작인 《드림캐처》 출판을 위해 출판사와 면담을 할 때의 일입니다.
1쇄 작품(1쇄만 찍고 사라지는 작품)이 허다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라, 어느 정도 팔아야 ‘성공했다’는 소리를 듣는지를 물었습니다.
5000부.
출판사에서 언급한 숫자는 고작 그것이었습니다.
편집자분의 말씀이, 우리나라에서 책을 읽는 인구가 손바닥이고(성인 10명 중 6명은 1년에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소설을 읽는 사람은 ‘한 줌’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래도 자기계발서나 에세이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지만, 소설은 이른바 ‘매니아’만이 관심을 갖는데, 구매까지 이어질 확률은 더욱 적다는 겁니다.
이렇게 업계가 척박한데도 여러분들은 ‘굳이’ 소설을 쓰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물어야 합니다. 왜 쓰려고 하는가.
쓰는 게 재미있어서? 쓰면서 상처를 치유할 수 있어서? 돈을 벌려고?
어떤 이유든, 내 글을 봐줄 독자가 있었으면 좋겠고, 그들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건 확실할 겁니다.
다행히 시대의 변화로 신춘문예나 출판사 투고와 같은 방법 이외에도 다양해진 공모전, 자유 업로드가 가능한 사이트를 통해 내 작품을 뽐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에 비례해 소설을 써 보겠다는 이들도 늘어나 내 작품이 묻힐 확률도 높아졌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척박한 환경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만 번을 흔들려도 소설의 결말을 지을 수 있는 이유를 마련해야 합니다.
왜 쓰려고 하는가? 이 질문이 여러분들의 소설 창작의 방향을 제시하고, 더 나아가 작가의 정체성이 될 겁니다.
위에 인용한 챕터에서 전상국 소설가님은 ‘왜 쓰려고 하는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쓰고 싶어서 쓴다
당신은 쓰지 않고 사는 일이 쓰는 일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어렴풋이 터득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쓰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
당신은 이미 소설 독자로서 소설을 좋아하는 단계를 넘어섰다.
그것은 열등감으로부터 시작된다
소설 쓰는 일이 자기를 지켜내는 일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됐기 때문에 이 길로 들어섰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열등 콤플렉스가 당신의 상상력을 부추기는 힘이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쓰는 일은 자기 구제의 길이다
문학은 자기 구제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소설을 쓰는 사람은 그 쓰는 행위가 그 사람의 삶을 지배할 수 있을 때 그 문학은 참된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문학적 재능이 있어야 한다 & 길 바로잡아 치열하게 달려가기
뭔가 풀고 싶은 강력한 욕구, 쓰는 일로 그것을 풀어낼 때 신명을 낼 수도 있다면 당신에겐 문학적 재능이 넘쳐흐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말에 대한 남다른 애착, 소설을 읽다가 문득 어느 낱말에 혹은 좋은 문장에 매료되어 긴장하는 당신의 소설문장에 대한 관심이 곧 문학적 재능이기도 하다.
윗글에 따르면, 수강생분들은 이미 문학적 재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 재능을 잘 다듬고 꽃 피우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저 역시 많은 준비를 하겠습니다.
강의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