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뿌린 달빛을
군데군데 더듬는
기억의 손길
막 피어난 하얀 빛을
조심스레 되접는
추억의 옛 길
이리저리 갈라져
봉평에 이르려나
제천에 머무려나
어딘들 어떠리
기억이 더듬은 길
수없이 오간 길
암만 거스르더라도
그 끝은 항상 낯설진데
-----------------------------
다들 한컴타자연습 아시나요? 하릴없이 평화로운 일요일 오전, 아침을 먹고 나니 다시 잠들 수 없는 몸이 되었더랬죠. 갑자기 이런 한가한 분위기를 언젠가 느껴본 적 있었는데, 대부분 그랬듯 어린 시절이 그러했습니다. 딱 그 나이에 열심히 하던 한컴타자연습이 생각나서 검색해봤습니다. 이제 한컴타자연습은 프로그램을 설치하는게 아니라, 사이트에 접속하여 이용할 수 있답니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는걸 실감하면서 장문 연습을 들어갔는데, 저는 한 번 더 놀라버렸습니다. 메밀꽃 필 무렵과 같은 명작 글이 없어지고, AI 동화가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어휘력도 기민함도 잃은 저는 그저 이것 참 이것 참 할 뿐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책장에서 단편소설집을 꺼내 기어코 메밀꽃 필 무렵을 찾아 읽었습니다.
백 자를 뻔뻔하게 넘겨버린 위 시는 메밀꽃 필 무렵의 등장인물인 '허생원'을 두고 썼습니다.
<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
소설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장으로 유명한 이 구절을 나누어 시를 도입해보았습니다. 제 필력이 부족하니 이효석이라는 걸출한 작가의 위세에 몸을 싣는, 몹시 야비한 행태입니다. 허 생원이 이 아름다운 대목에서 시간을 거스릅니다. 실제로 거스르지는 않습니다. 아니, 물리적으로라고 해야겠네요. 정신적으로는 거스르지요. 기억이라는 정신작용으로 흩뿌려진 달빛을 거두고, 막 피어난 메밀꽃을 다시 접으며 예전으로 점점 살아온 길을 거스릅니다. 아들이라 짐작되는 동이 때문에요. 어쩌면 찰나간 사랑이라는 감정을 나누었을지 모르는 여인때문일지도요. 그런 허생원은 어디로 갈까요? 시간을 거스른다면 목적지가 있을 겁니다. 늘 발품을 팔며 살아온 허생원에게 장을 오가는 길은 몹시 익숙합니다. 선명하게 길을 찾아가겠지요. 그렇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마음이 원하는 과거로는 몸이 갈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이 더듬고 인식이 나아가는 길에 몸을 실으면 도착할 곳은 뻔합니다. 과거가 아닌 미래이지요. 두 왼손잡이가 과거를 더듬으며, 익숙하다 여기는 길을 거슬러 가더라도 그 끝에 펼쳐질 어떤 가정사는 아마 모두에게 낯선 새로운 광경일겁니다.
저는 허 생원이 이번에는 행복을 얻을거라 믿어요. 한 번 성공했다가 나귀 빼고 전부 날려버린 적 있는 사람이잖아요. 한 번 실패를 맛보았으니 이번에는 현명하게 인생을 개척하리라 믿어요.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도 그러한 믿음이 있습니다. 추억이라는 단어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그 끝에 우리는 더 아름다운 미래를 향하게끔 도와주기도 하기 때문이라 생각하니까요.
흩뿌린 달빛을
군데군데 더듬는
기억의 손길
막 피어난 하얀 빛을
조심스레 되접는
추억의 옛 길
이리저리 갈라져
봉평에 이르려나
제천에 머무려나
어딘들 어떠리
기억이 더듬은 길
수없이 오간 길
암만 거스르더라도
그 끝은 항상 낯설진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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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한컴타자연습 아시나요? 하릴없이 평화로운 일요일 오전, 아침을 먹고 나니 다시 잠들 수 없는 몸이 되었더랬죠. 갑자기 이런 한가한 분위기를 언젠가 느껴본 적 있었는데, 대부분 그랬듯 어린 시절이 그러했습니다. 딱 그 나이에 열심히 하던 한컴타자연습이 생각나서 검색해봤습니다. 이제 한컴타자연습은 프로그램을 설치하는게 아니라, 사이트에 접속하여 이용할 수 있답니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는걸 실감하면서 장문 연습을 들어갔는데, 저는 한 번 더 놀라버렸습니다. 메밀꽃 필 무렵과 같은 명작 글이 없어지고, AI 동화가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어휘력도 기민함도 잃은 저는 그저 이것 참 이것 참 할 뿐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책장에서 단편소설집을 꺼내 기어코 메밀꽃 필 무렵을 찾아 읽었습니다.
백 자를 뻔뻔하게 넘겨버린 위 시는 메밀꽃 필 무렵의 등장인물인 '허생원'을 두고 썼습니다.
<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
소설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장으로 유명한 이 구절을 나누어 시를 도입해보았습니다. 제 필력이 부족하니 이효석이라는 걸출한 작가의 위세에 몸을 싣는, 몹시 야비한 행태입니다. 허 생원이 이 아름다운 대목에서 시간을 거스릅니다. 실제로 거스르지는 않습니다. 아니, 물리적으로라고 해야겠네요. 정신적으로는 거스르지요. 기억이라는 정신작용으로 흩뿌려진 달빛을 거두고, 막 피어난 메밀꽃을 다시 접으며 예전으로 점점 살아온 길을 거스릅니다. 아들이라 짐작되는 동이 때문에요. 어쩌면 찰나간 사랑이라는 감정을 나누었을지 모르는 여인때문일지도요. 그런 허생원은 어디로 갈까요? 시간을 거스른다면 목적지가 있을 겁니다. 늘 발품을 팔며 살아온 허생원에게 장을 오가는 길은 몹시 익숙합니다. 선명하게 길을 찾아가겠지요. 그렇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마음이 원하는 과거로는 몸이 갈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이 더듬고 인식이 나아가는 길에 몸을 실으면 도착할 곳은 뻔합니다. 과거가 아닌 미래이지요. 두 왼손잡이가 과거를 더듬으며, 익숙하다 여기는 길을 거슬러 가더라도 그 끝에 펼쳐질 어떤 가정사는 아마 모두에게 낯선 새로운 광경일겁니다.
저는 허 생원이 이번에는 행복을 얻을거라 믿어요. 한 번 성공했다가 나귀 빼고 전부 날려버린 적 있는 사람이잖아요. 한 번 실패를 맛보았으니 이번에는 현명하게 인생을 개척하리라 믿어요.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도 그러한 믿음이 있습니다. 추억이라는 단어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그 끝에 우리는 더 아름다운 미래를 향하게끔 도와주기도 하기 때문이라 생각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