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날려버린 글씨들이 아까웠다. 하지만 흘려보냈다. 삶이란 언제나 그렇듯 예기치 못한 순간들로 가득차 있고, 그것을 누군가는 카오스라는 어휘를 통해 하나의 이론으로 발전 시켰다. 그렇다면 오늘 완성해낸 그것 또한 카오스의 작용이 아니었다면 완성하지 못했을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Sanctuary라는 단어가 뇌리에 깊이 박혀 사라지지 않던 그 시점부터 줄곧 마음 속으로 품고 있었던 것이 현실로 튀어나오기까지 무려 3년이 걸렸으니까. 3월 말에 내리는 눈처럼 비현실적인 카오스, 그 가운데서 3년의 망설임이 물질로 현현된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라져버린 글의 마지막 자락에서 나는 이렇게 적었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삶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그러한 나의 태도를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이전의 연인 또한 그랬던 것 같다. 어쩌면 그래서 그 애가 떠나갔던 건지도 모른다. 아니 내가 나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했기에 그 애가 떠나간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해했다고 하더라도 나는 나를 떠나는 그 애의 삶의 방향성에 개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그건 방임 아니야? 누군가는 그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방임이 아니라는 걸 잘 안다. 나는 이런 삶의 태도를 철저하게 견지하기 위해 태어났다. 어떤 이들은 적극적으로 삶에 개입하기 위해 태어났다. 기묘하게도 나는 그런 이들에게 둘러싸인 환경 속에서 자라왔다. 나는 그들이 내 삶에 개입할 때 저항하지 않는다. 그저 지켜보고, 받아들이고, 천천히 스스로를 흘러가게 만든다. 그들이 사라져버리기 전까지.
쓰다 날려버린 글씨들이 아까웠다. 하지만 흘려보냈다. 삶이란 언제나 그렇듯 예기치 못한 순간들로 가득차 있고, 그것을 누군가는 카오스라는 어휘를 통해 하나의 이론으로 발전 시켰다. 그렇다면 오늘 완성해낸 그것 또한 카오스의 작용이 아니었다면 완성하지 못했을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Sanctuary라는 단어가 뇌리에 깊이 박혀 사라지지 않던 그 시점부터 줄곧 마음 속으로 품고 있었던 것이 현실로 튀어나오기까지 무려 3년이 걸렸으니까. 3월 말에 내리는 눈처럼 비현실적인 카오스, 그 가운데서 3년의 망설임이 물질로 현현된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라져버린 글의 마지막 자락에서 나는 이렇게 적었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삶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그러한 나의 태도를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이전의 연인 또한 그랬던 것 같다. 어쩌면 그래서 그 애가 떠나갔던 건지도 모른다. 아니 내가 나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했기에 그 애가 떠나간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해했다고 하더라도 나는 나를 떠나는 그 애의 삶의 방향성에 개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그건 방임 아니야? 누군가는 그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방임이 아니라는 걸 잘 안다. 나는 이런 삶의 태도를 철저하게 견지하기 위해 태어났다. 어떤 이들은 적극적으로 삶에 개입하기 위해 태어났다. 기묘하게도 나는 그런 이들에게 둘러싸인 환경 속에서 자라왔다. 나는 그들이 내 삶에 개입할 때 저항하지 않는다. 그저 지켜보고, 받아들이고, 천천히 스스로를 흘러가게 만든다. 그들이 사라져버리기 전까지.
남아있는 상흔들은 어떻게 해야하나.
그것은 내 몫입니다.